▲ 유관순 열사 생가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해마다 3‧1절이 되면 어디선가 하늘을 찌르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국적인 항일 운동을 벌인 역사적 사건으로, 학생·농부·노동자·교원·상인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동참했다.

그 중에도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흔들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3‧1절을 맞아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지명을 통해 열사의 삶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용의 머리를 닮은 마을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

우리나라의 지명을 보면 그 곳의 지형이나 생태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지명 속에 지역 사람들의 문화나 소망 등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마을의 문화, 역사를 담고 있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한반도의 자주독립과 민족자결을 전 세계에 알린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3‧1운동과 관련된 지명은 탑골공원, 보신각 등 전국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제의 침탈에 맞서 전국적으로 일제히 항일운동이 전개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3‧1운동 자체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에 위치한 ‘만세고개’는 3‧1운동 당시 원곡면 주민 1천여 명이 만세시위를 펼쳐 지명이 유래됐다.

또한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던 서울의 보신각, 학생단이 주최해 만세시위가 펼쳐진 남대문역전을 비롯해 기독교·천도교·불교 등 종교계의 옛 교육기관이 있었던 장소들도 3‧1민족운동의 산실로 기록돼 있다.

특히 3‧1운동으로 체포돼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삶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지명과 함께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의의를 더했다.

충청남도 천안시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비롯해 유관순 열사가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병천면 '아우내장터'와 '매봉산' 등도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지명이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병천(並川)지역은 백전천과 갈전천의 두 물길이 어우러지는 곳이라 하여‘아우내’라 부른데서 유래됐다.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를 부르던 아우내 장터에는 이러한 옛 지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용두리 전경
▲ 유관순 열사 생가터, 매봉산 일대

“독립 만세 운동의 시작을 알린 매봉산”

용두리 마을에 있는 매봉산은 유관순 열사의 생가 뒤에 자리 잡은 산으로 3‧1운동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거사일을 앞둔 자정, 유관순 열사는 이 산에 올라 봉화를 지펴 만세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매봉산은 독립운동의 봉화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역사적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지명이다.

▲ 매봉산 정상 봉화지
“매봉산 정상 봉화지”

매봉산이라는 지명과 관련하여서는 매가 많이 날아들었다는 일부 주민의 고증이 전해지기도 하고, 산의 순 우리말인 ‘뫼’와 같은 의미라는 유래가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거사를 알리는 신호탄인 매봉산 정상의 봉화를 신호로 일대의 갓모봉, 개목산 등에서도 봉화가 올랐다.

당당하고 유유하게 하늘을 나는 매처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의연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독립 의지를 불태운 아우내 장터”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竝川)지역은 유관순 열사가 어린 시절 자랐던 곳으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곳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인 특성에서 지명이 유래된 곳으로, 인근의 백전천과 갈전천의 두 물길이 이 곳에서 아우러지는 곳이라고 해서 “아우내”, “어우내”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아우내 장터에는 이러한 옛 지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우내 장터는 우리 국민들 사이에 특별한 역사적 사건과 결부돼 기억에 남는 지명이다.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아우내 장터는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애국선열들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작은 강들이 만나 거대한 강줄기로 흘러가듯, 뜻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아우내 장터에 모였다. 1919년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아우내 장터에 모여 치열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유관순 열사는 열일곱의 어린 나이였지만 이곳의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수많은 열사들이 독립을 위한 열망으로 온 마음과 몸을 던지며 아우내 장터로 나섰고, 당시 만세 소리는 거대한 함성이 되고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 조선지형도 병천면 일대

“유관순 열사의 삶과 지명“

유관순 열사의 삶은 열사와 관련된 지명과 아주 닮았다. 용두리라는 용의 머리를 닮은 마을에서 태어나, 매봉산의 매처럼 의연한 기개를 가지고, 큰 강으로 흘러가는 힘찬 물줄기처럼 사셨다.

3‧1운동은 우리 민중의 불꽃같은 열정으로 수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를 각인시켰다.

3‧1절을 맞아 아우내 장터 등 역사적 장소를 방문해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항거한 3‧1운동의 함성과 열기를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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