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영 대표기자
최문영 대표기자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표현처럼, 정치도 소비하는 시대다.

미디어 평론가 마셜 맥루한의 말처럼 온갖 미디어는 ‘시간과 공간’ 체계를 허물어뜨렸고,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쏟아붓는다.

정치 소비 역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 표현을 빌리면 유권자도 소비자처럼 미디어를 통한 지속적 세뇌에 반응하는 파상실재인 ‘시뮬라시옹(이미지 세계)’으로 소비한다.

정치는 소통이다. 소통은 나와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처럼 소통은 정치인 최고의 ‘아비투스(habitus)’다.

아비투스는 제2의 본성’과 같은 것으로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규정한 용어다.

브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으로 구분짓는다.

아비투스는 돈으로도 학습으로도 단 시간에 바뀌지 않는다. 아비투스는 오랜 기간 습숙(習熟)된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아비투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폭로한다. 

정치적 아비투스는 오랜 경험에서 오는 대중적 설득력과 협상력으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하나로 통합하고, 파괴를 생산적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부르디외는 ‘뛰어난 마구간의 말이 시작부터 추월 코스를 달린다’고 했다. 야생의 세계에서도 서열이 높은 암컷 새끼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존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조강특위가 24일 오후 중앙당에서 회의를 열고 일부 사고지역 당협위원장 인선 결과를 발표한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의정부갑 당협이 또 다시 ‘보류’ 지역으로 제외됐다는 소문이 며칠 전부터 솔솔 흘러나온다. 결론은 당 최고위를 통과해 발표될 예정이다,

보류 소문에 지역정가는 ‘의정부갑은 내년 총선에 현 전희경 대통령실 비서관 전략공천’을 위해 당협위원장 자리를 비워둘 거란 자기이행적 확증편향이 더욱 굳어졌다.

사람들 대부분 집단 내 행동 규칙과 코드를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전략공천은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지역 내 대다수 당직자가 요구하는 바텀업(bottom up) 방식의 경선과는 거리가 멀어, 시간이 갈수록 갈등으로 표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희경 비서관은 지난 20대 비래대표 국회의원, 21대 총선 인천동구‧미추홀구갑 출마, 2021년 11월~2022년 2월 서울시 서초갑 당협위원장 등 짧은 시간에 여러 지역을 옮겨다녔다.

앞서 의정부갑 당협위원장 희망자는 현 최영희 비례대표 국회의원, 전 당협위원장, 전 시의원 등 14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최소 10여년 이상 지역 당원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소통해온 보수의 등굽은 소나무다. 그들이 누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지역에선 상대인 더불어민주당 쪽이 더 잘 안다.

조강특위의 미온적 태도에 의정부갑 당협은 지난 1년 6개월간 구심점을 잃어버린 방치 상태다. 사실상 내년 총선을 7개월 앞둔 시점에 더 이상 조직을 추스르고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 지역 관계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통령실이나 과거 당대표 비서실장을 했었다고, 힘으로 누른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이제 당협위원장이 누가 되든 상관치 않겠다.

시대적 화두는 공정이다. 이젠 보수가 진보보다도 더 청렴하고 공정해야 한다. 지역 정서와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서도 국민의힘 의정부갑은 경선으로 총선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열되는 지역정가를 바라보는 기자의 심경은 보수의 내포티즘(족벌주의) 망령이 눈 앞에 어른거려 더욱 착잡해진다.

의정부 갑지역은 지난 28년간 진보정치의 맹주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 6선, 오영환 의원 1선 등 단 한 번도 총선에서 이긴 적이 없는 보수의 아웃사이드다.

더구나 내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보수의 근거없는 낙관론이 커지고 있다.

‘도박사(몬테카를로) 오류’는 합리적 사고를 방해한다. 오류는 임의 사건이 점점 더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을수록 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한다. 주사위 놀이나 로또 복권도, 룰렛 게임도 마찬가지다.

로또를 하는 사람들은 앞서 뽑힌 숫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 역시 오류다. 숫자 조합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성난파도가 유능한 선원을 만드는 것처럼, 뜨거운 불속에서 단련된 쇠붙이가 좋은 칼이 되는 것처럼.

보수의 양심은 지역을 지킨 ‘등굽은 소나무’의 은혜에 보답하는 탁월함의 아비투스를 선택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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