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겸 철학박사
김정겸 철학박사

필자는 일전에 “진실한 혁명”에 대해 기고를 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영남은 국민의 힘 당이고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식의 카테고리 화에서 벗어나냐 한다고 주장했다. 울타리가 쳐져있는 카테고리에서는, 블록(block)화 되어 구분있는 사회나 국가에서는 빈번히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인가? 사회적 비용이란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비용“으로 정의한다. 각각의 사회적 비용이 있겠으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비는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편 가르기는 사회적 악(惡)으로써 빠른시일 내 고쳐져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악을 일소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국민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 전에 정치권의 반성이 먼저 있고, 그리고 정책적으로 일소를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 국민과 정치인 모두 의식전환을 위한, 새로운 정치를 위한 새로운 안경이 필요하다. 필자는 진실한 혁명이란 기고에서 ”반대당이라도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유연한 사고는 정당 간의 대립을 완화 시킬 수 있다. (중략) 진실한 혁명이란 인간사회의 계층 간 블록(block)이 없는 즉, 어떤 틀로 규정되지 않는 사회를 인정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필자는 오늘은 melting pot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melting pot은 다문화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는 언어이다.  melting pot은 ”용광로“라는 뜻으로 이질적인 문화의 소수집단 유입으로 사회 내 갈등이 야기됨으로써 사회적인 구심력이 약화되기 쉽다. 즉, 사회분열의 제1 원인으로 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소수집단의 문화 특수성을 인정하고 비주류 문화에서 주류 문화로 흡수시킴으로써 사회통합을 의도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당과 야당 각 정당의 가치를 인정하고 흡수하는 정치적인 melting pot이 필요하다고 본다. 통합과 융합의 정치가 이루어 지지않기 때문에 전 정권에서 시행해 온 것을 전부 뒤집어 엎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려고 한다. 아니다. 그러면 안된다. 그러다 보니 갈등유발의 원인을 제공한다. 좋은 것은 승계하라. 그리고 완전히 잘못된 것이 있다면 충분한 숙의를 통해 바로 잡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해야 한다. 교육학자 워커(D. F. Walker)는 교육과정개발모형으로 숙의 모형을 제시한다. 먼저 상세한 계획 수립한 후 다음으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를 숙의(熟議:deliberation)과정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갈등이 유발되어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위대함이 melting pot에 있다. 인종 한계를 뛰어넘은 그들의 위대함은 정치에도 적용되어 미국인의 위대함을 부르짖는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주의에 대한 고집이 정치 철학의 부재를 낳게 하는 원흉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순수 혈통만을 고집함으로써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 즉 melting pot만이 정치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순수 혈통만 주장하는 양당정치에서 벗어나 다당정치의 틀이 만들어져야 진정으로 이런 저러한 여론 모두를 담아서 보다 훌륭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색의 사용에 대해 한국화와 서양화를 비교해 보자. 한국화는 수묵화라고 한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담백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여기서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화 채색에 있어 검은색, 그리고 그 여백은 흰색이다. 마치 정치의 대결 구도가 나오는 것 같다. 즉, 흑과 백의 갈등 구조이다. 지금 우리 정치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너의 편 아니면 나의 편의 편 가르기의 정치는 희망이 없다. 소수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수당의 힘의 논리가 지배할 뿐이다. 

그러나 서양화의 채색은 다양한 색깔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색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색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파란색과 노란 색을 썩으면 초록색, 빨간색이랑 파란 색을 썩으면 보라색, 노랑과 빨간 색을 썩으면 주황색 등이 다양한 색이 창조된다. 이렇게 탄생한 색은 신비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치적 평화는 국민의 평화를 가져온다. 의견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 국민과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협오하면서도 정치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즉, 삶의 기본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 근본(basick)을 고쳐야 한다.   

정치의 왕도(王道)는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 되어 합창하는 하모니(harmony)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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