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청와대, 국방부 용산 청사로 이전 결정‘을 천명해 용산(龍山)시대로의 정치적 진화를 예고했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많은 부분이 황금률의 지배를 받는다. 정치적 황금률은 지난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역할이 뒤바뀌었다. 이에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청와대 이전이 단지 풍수(風水)적 믿음 때문이냐‘고 폄하해 새삼 풍수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청와대 이전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풍수설? 주장은 대통령 당선자의 뜻을 샤머니즘으로 폄하하려는 의도다.

풍수는 본래 땅·바람·물 등 자연의 기운을 읽는 인법지(人法地)·지법천(地法天)의 원리다. 땅의 형세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학설이 풍수지리(風水地理)다. 풍수는 과거 조상들이 바람을 막는 곳에 집터를 잡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오곡과 면화를 길러야 생존할 수 있는 의식주의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이처럼 풍수는 미신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밈(meme-문화적 유전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중세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풍수적 세계관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옛사람들의 역사·철학·과학·역학(주역), 생활속에 풍수적 사고가 녹아 있다. 흔히 배산임수, 로또명당, 남향집, 대박가게 터 등 일상적 용어도 풍수에서 나온다. 이처럼 좋은 땅(명혈)에 대한 욕망도 가문의 번성, 인재 배출, 존귀·장수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옛사람들은 높은 산에서 나온 땅의 기운인 혈맥이 산맥을 타고 흘러나온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풍수는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온 산줄기가 척추 역할을 하며 정맥과 정간을 줄기삼아 국토 곳곳에 지기(地氣)를 공급하고 있다고 믿었다. 전 세계의 고인돌의 80%가 한반도에 집중돼 있다. 이것은 한반도 전체가 인류의 생활한경에 적합한 보기드문 명당이란 의미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도사들은 삼재(도병(刀兵)·질역(疾疫)·기근(飢饉)) 불입지지(三災 不入之地)를 찾아 전국의 심산유곡을 헤맸다. 그래서 나온 이론이 정감록이나 조선 중기의 도인 남사고의 비결 십승지(十勝地)론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자신의 팔도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 ‘인걸(人傑)은 땅의 기운으로 태어난다(인걸지령·人傑地靈)’고 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환경결정론적 풍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여말선초 하륜(河崙, 이방원 측근 문신)의 주장으로 계룡산 땅 천도가 무산되고, 풍수 이론에 맞게 입지가 정해지고 도시가 설계된 대표적 풍수 도시다. 한양의 주산은 북악산이고 명당은 한양 안쪽, 혈장은 경복궁이고 땅의 정기가 충만한 혈처(파워스팟)가 근정전 용상이다. 혈처는 현대적 의미로 랜드마크라는 의미다. 도시적 풍수로는 높은 빌딩 등이 혈처에 해당된다.

한양의 공간적 배치는 북악산(현무)을 주산(主山)으로 인왕산(백호), 낙산(청룡), 남산(주작, 안산), 관악산을 조산(朝山)으로 삼았다. 북악산은 뒷편 북한산(소조산·小祖山), 도봉산(중조산), 태백산(태조산) 혈맥을 이어받았다. 한양의 동쪽 문인 흥인문의 정식명칭이 흥인지문(興仁之門)인 까닭은 풍수적 공간인 좌(左) 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기운이 빈약해 갈지(之)를 흘려 써 산의 모양을 보충하려 했다.

풍수 이론에 따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긍정적 측면에서 북한산과 한강이 어우러진 배수임수의 명당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유래 없는 단일왕조로 518년을 이어왔고 현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반대적 측면으로는 조선왕조 500년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침탈로 점철된 역사다. 해방 이후 근·현대에서는 청와대를 거쳐간 대통령 대부분 말로가 불행했다고 주장한다.

풍수에서 주산은 터의 길흉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경복궁과 청와대는 북악산을 중심으로 자리했으나 배산임수 자체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물체는 앞뒤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앞에는 태아를 잉태하고 모유하는 생식기관이 있는 반면 뒤에는 인체의 배설기관이 있다. 따라서 만물을 생육하는 생기가 모이는 곳도 앞부분이다. 그렇듯 산에도 앞뒤가 있으며, 좋은 땅은 반드시 산의 앞에서 형성되는 법이다.

풍수에서 주산의 앞뒤를 가리는 분명한 방법은 봉우리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북악산의 봉우리 정상 부분은 동쪽으로 향해, 경복궁과 청와대를 외면하고 있다. 어머로부터 외면당한 품안이 편안할 수 없듯이 주산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은 결코 좋은 땅이 아니다. 경복궁과 청와대의 풍수적 결함이 바로 이것이다.

주산·북악산은 342미터로 청룡·낙산 125미터, 백호·인왕산 338미터, 안산·남산262미터로 낙산이 인왕산에 비해 너무 낮아 좌우 균형이 맞지 않다. 특히 청룡·백호는 좌우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소임이다. 그래서 청룡·백호가 너무 크고 높은 것은 핍박하는 형태로 적절치 않다. 낙산처럼 너무 낮은 것은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불리하다.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은 오형상(五形像) 대표적인 목형(木形)산이다. 모습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우뚝한 모습이지만 필연적으로 좌·우측은 V형의 깊은 고갯마루를 이루게 돼 바람을 막기에는 불리한 형태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자하문 고개가 함몰돼 바람의 통로가 됐다. 고갯마루 바람을 풍수에선 음풍·요풍·질풍·살풍 등으로 표현한다.

서울의 랜드마크 청와대와 함께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풍수가들이 지적하는 대표적인 흉당이다. 국회의사당은 한강물이 빠지는 파구 터로서 온갖 탁한 것이 모이는 지형이다. 풍수에서 물이 내 몸으로 유입되는 지점을 득수라 하고 내 몸에서 빠지는 곳을 파구라 한다. 득수는 재물이 모이는 곳이지만 파구는 찌거기를 배설하는 곳이다.

풍수 이론에 따르면 국회 정문 앞에 두 눈을 부릅 뜬 해태상이 상징하는 뜻은 화재로부터 보호하기보다도 시시비비를 가려 불의를 응징하고 정의를 수호하려는 의미다. 광화문 앞 해태상은 경북궁을 복원한 대원군이 길 양 옆에 도열한 육조 관아를 지켜보며 관리들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염원에서 세운 것이다.

청와대 용산 이전에 앞서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행태를 낱낱이 지켜볼 수 있도록 국회의사당 앞 해태상 머리를 반대로 돌려놓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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