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돈/소설가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죽기까지 수많은 인연(因緣)을 맺는다. 태어날 때 이미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天倫)을 안고 생을 시작하지 않던가? 불가에서는 7겁 인연을 받아야 부부가 되고, 10겁 인연이 무르익어야 부모·자식이 된다는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 가르침이 있다. 그리고 내게는 청춘시절 너무도 각별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다.

고교시절 북쪽의 작은 전곡읍에서 경원선 열차로 한 시간 정도 도시인 의정부로 유학을 오면서 1학년 담임으로 김태범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 지금 내 연배보다 훨씬 젊으셨던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셨다. 오늘 내가 글쟁이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청소년의 주장’이란 스피치 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 지도 덕분이다.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 큰 금액의 장학금을 받았지만 그때 난 고작 넥타이 한 개를 선물했을 뿐이다.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시고 지금은 소일 삼아 농사를 지으신다. 가끔 내가 개최하는 인문학 강의에 연사로 부탁드리면 극구 사양하시며 농부로 족하시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은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풍흉에 관계없이 밭작물을 가져다 주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단호박과 땅콩 꾸러미를 내놓으셨다. 사실 선생님은 오른손에 장애가 있다. 왼손 하나로 힘든 밭농사를 지으시려면 남보다 몇배 땀을 흘려야 한다. 이번에 두고 가신 꾸러미를 바라보니 선생님 수고와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스승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지천명(知天命) 제자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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