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봉수 경민대 교수/정치학 박사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퇴진시킨 ‘시행령개정 국회법 파동’의 여진이 언론에서 계속되고 있다. 파동의 진행과정을 복기하며 향후대책을 논하는 관련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 가운데는 거버넌스, 협치(協治)가 필요하다는 주장들도 나온다. 현재 운영되는 시스템이나 방식이 문제라고 여길 때마다 새로운 개념, 새로운 시스템으로 등장하는 것이 거버넌스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내 정치학박사 논문의 주제이기에 관심이 더 갔다. 나는 경기도의원 시절에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간의 권한관계를 주제로 행정학석사 논문을 썼다. 그리고 나중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5년이 지나서 논문주제를 정하고 쓸 수 있도록 추동력이 된 것이 거버넌스다. 2000년대 당시, 획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간의 ‘교육협력사업’을 거버넌스의 구조(Structure)와 과정(Process)이라는 프레임(Flame)을 통해 쓰게 됐을 만큼 거버넌스는 내게 이른바 ‘꽂힌 개념’이다.

거버넌스는 사회과학에서 사용되어지는 추상적이고 다의적(多義的)인 신개념이다. 정치나 정치학에서는 협치라는 개념으로, 행정학에서는 국정관리로,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지배구조 등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다의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우리말로 번역해 사용하기보다 거버넌스 그대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학)에서의 거버넌스는 통치에 대립되는 협치를 의미한다. 통치는 사전적으로는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리는 것이다. 도맡아 한다는 것은 정책결정이 특정개인이나 소수집단에 의해서 전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정부를 중심으로 행해지던 통치는 그 정책결정구조가 폐쇄적이고, 집권화 되어 있으며, 운영방식 또한 권위적이고, 상명하복의 계층제적인 것이 특징이다. 반면, 협치는 정부가 독점하던 정책결정에의 참여가 개방적이고, 분권화 되어 있으며, 운영방식도 수평적이며,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집권초기부터 ‘불통정권’라는 비판을 받았던 박근혜 정부는 통치형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문고리 3인방’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정책결정구조가 폐쇄적이었으며, 시스템운영도 상명하복의 계층제적인 요소가 많았다. 국무회의나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고위관료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는 대신 토론은 부재했다. 장관이 대통령을 독대해 직접 보고하기보다는 서면보고나 관계비서관을 통해 보고가 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스템 운영의 귀재’라는 평을 받았던 것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시스템을 통한 국정운영보다 혼자 모든 것을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통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때문에 특별히 되는 일도, 아주 안 되는 일도 없는, 현재까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는 세평을 받게 됐다.

통치는 통치자와 피치자(被治者)간의 힘의 균형이 통치자 한쪽에 쏠리고 자신감이 넘쳐날 때 주로 나타난다. 정권초기에 대개의 집권자들은 통치에의 강한 유혹을 받는다. 그러다 집권 중반이 지나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도 약해지면서 제 세력 간의 타협을 모색하게 되고, 말년에는 레임덕이 오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집권중반의 지금, 다시 협치가 거론된다는 것은 다른 전임 정권들에 비해서도 하등 특별한 경우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부재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얘기다.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거버넌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 현재에도 당·정·청간의 거버넌스 시스템은 구축되어 있다. 여당대표와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여하는 고위 당정회의, 그리고 실무기구인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 등이 있으나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시스템 자체보다는 그것을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거버넌스의 진정한 가치는 시스템과 같은 구조적인 측면보다는 운영방식 같은 과정적인 측면에 있다. 거버넌스는 갈등과 대립, 타협, 조정 등의 정치적 과정을 협치라는 틀에서 다룬다.

이 문제는 ‘경기도 교육협력사업’을 다룬 내 박사논문을 통해 논증한 바도 그러했다. 2003년 경기도에서는 전국 최초로 행정집행기관(경기도)과 교육행정기관(경기도교육청)이 거버넌스 협치를 통하여 지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협력사업’을 벌였다.

경기도의 교육거버넌스는 막대한 교육협력사업 예산을 다년간 투입했다. 관련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양쪽 기관에 관련부서를 신설했다. 도와 교육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수평적관계의 교육협력사업협의회를 정례적으로 개최·운영하고,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교육협력관 같은 조직, 기구 등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교육지원사업은 낙후된 지역의 교육수준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면서 해당 지역민들의 높은 호응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교육거버넌스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에 교육협력 시스템의 모델이 되어 유사한 거버넌스가 도입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교육협력사업이라는 전례가 없었던 당시, 경기도의 교육거버넌스가 법적, 제도적, 재정적 기반 같은 구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운영과정에서 거버넌스의 가치가 적절히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간에는 지역의 교육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목표아래 그를 실현하기 위한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거버넌스 협치라는 틀에서 이상적으로 구축, 가동하였다. 윈-윈(Win-Win)의, 상생의 거버넌스, 협치가 구현되었던 것이다.

손학규 도지사가 시작해 김문수 도지사 재임 중에도 비교적 순항하던 ‘교육협력사업’은 임명제였던 경기도교육감이 직선제로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진보성향의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김문수 도지사와 보수 vs 진보라는 대립구도가 형성되었고, 이질적인 두 사람의 성향만큼 ‘교육협력사업’을 바라보는 목적도, 접근하는 방법도 달랐다.

결국 법적기반, 제도, 조직, 재정, 시스템 등과 같은 구조적 거버넌스는 구축되어 있었으나 그를 운영하는 양자사이의 정책상의, 이념상의, 접근하는 방법상의 차이 등으로 과정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동 사업은 좌초, 폐지되고 말았다. 교육협력의 네트워크, 시스템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협치라는 파트너십이 무너진 것이다. 갈등과 대립, 타협, 조정 등의 정치적 과정을 거버넌스 협치라는 틀로 다루는데 실패한 것이다.

‘교육 거버넌스’의 실험이 있었던 경기도에서 다시 '연정(聯政) 거버넌스'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남경필 도지사가 가동하는 경기도의 ’연합정부 실험’이 그것이다. 야당 출신에게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의 자리를 내주고, 경기도의 여야 양당 지도부, 도청 집행부들로 ‘연정실행위원회’를 구성해서 연정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지 논의하는 것이다. 연정자체가 목적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정책적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스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정치의 체제’라기보다는 ‘사회의 상태’라고 주장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요인으로 지리적 유리함, 법제적 요인, 풍습을 꼽았다. 법제적 요인이 제도나 시스템 같은 ‘정치의 체제’라고 한다면, 풍습은 국민의 습성, 관행, 의견, 신앙 등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해낼 수 있는 지적, 문화적, 도덕적, 사회적 인프라 등을 의미하는 ‘사회의 상태’를 말한다.

이를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정치의 체제’는 구조이고, ‘사회의 상태’는 과정인 것이다. 거버넌스의 가치는 구조의 구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어떻게 제대로 가동하느냐 그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협치는 상관관계가 있고 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체제, 구조가 갖추어졌다고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나의 과정으로 운영해낼 수 있는 지적, 문화적, 도덕적, 사회적 인프라 등이 함께 수반되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체제, 구조로서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상태,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가동되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거버넌스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는데 있어 꼭 필요한 시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버넌스, 협치는 상생의 정치, 공동선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의정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