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김정일이 유명을 달리했다. 언론은 서둘러 각계의 전문가를 초빙해 김정일 사후의 한반도를 진단하느라 법석이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시각은 놀라우리만치 일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남한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같은 겨레로서 북한 주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관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남과 북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갈려버린 것일까? 그러기에는 같이 살아온 오천 년이란 세월이 너무 길다.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은 남북 분단이 겨레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님에도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미세한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대하며 다음과 같은 화두를 떠올려본다.

북한 없이 남한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당장은 많은 사람이 ‘그렇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사정이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 화두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18년 전 세상을 떠난 김일성이 죽기 직전 지미 카터에게 털어놓았던 경천동지할 한 마디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군 2사단을 북한에 진주하도록 하면 어떻갔소?’ 동토의 신 김일성이 한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그는 카터와의 대동강 선상회담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했고 그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과 자신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꼭 17일 전 그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미스터리는 없는 것인가?
물론 김정일이 건재하는 북한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의심이 제기될 수는 없었던 노릇이다. 김정일이 죽고 그의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 시점에서도 그의 죽음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의문은 내 머리에서 도저히 떠나지지 않는다. ‘의사를 보내라! 의사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가 죽었던 묘향특각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의 무전이 평양으로 빗발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24시간 그를 따라다닌다는 8명의 의사는 하필이면 그때 어디로 간 것인가? 평양에서 의사를 태우고 출발한 직승기 두 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일성은 주치의도 없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일까? 어째서 평양에서 떠난 차량들은 그가 신음하고 있던 시간 묘향산 아래에서 방향을 되돌려 돌아갔던 것인가? 무슨 이유로 호위총국의 김일성 담당 1국 요원들과 김정일 담당 2국 요원들 사이에는 총격전이 벌어졌던 것인가?  이런 작은 의문들이 이내 또 하나의 큰 의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째서 미국이 뒤를 받치는 김일성-김영삼 정상회담은 무산되고 중국이 주도한 김정일-김대중 정상회담은 성공했던 것일까?

그리고 동북공정.
김정일이 세상을 떠나고 어리디어린 김정은이 중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권좌에 선 지금, 고구려를 한족이 건국했다는 이 역사 왜곡 이론이 예사롭게 다가오지만은 않는 순간 나는 다시 우리 남한이 그냥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지, 김정일 급사 사태의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으면 되는 건지 되짚어보게 된다. 차차 하나의 불길한 예감이 떠오른다. 혹시 북한은 점점 중국화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그리하여 종내는 중국의 식민지나 혹은 중국의 23개 성 중 하나가 되고 마는 건 아닌지, 북한이 중국에 들어가고 나면 그 다음은 남한의 차례가 오지는 않을는지. 우리는 당대에 치러야 할 중국과의 투쟁을 자식에게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처음의 의문으로 되돌아간다. 그 누구보다 중국을 속속들이 아는 김일성은 왜 미군 2사단을 북한에 주둔시키자고 제의했던가? 혹시 그의 죽음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임진년 새해 벽두에 같은 제목으로 '신의 죽음' 개정판을 낸다.  그만큼 김정일의 급사라는 사태를 맞은 한반도의 상황은 엄중하기 때문이다. 
 

2012. 1. 10. 용두산에서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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